혈당이 500을 넘을 때까지 저는 제가 당뇨인 줄 몰랐습니다. 30분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도 "그냥 좀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당뇨는 증상이 없어서 위험하다는 말, 저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당뇨에 대한 흔한 오해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이야기입니다.

당뇨는 단 것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당뇨는 단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고, 솔직히 그 믿음이 저를 방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당뇨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은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입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이동시키는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세포 문을 여는 열쇠가 있어도 자물쇠가 망가진 것과 같습니다. 이 자물쇠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바로 내장 지방에서 분비되는 유리 지방산(Free Fatty Acid)입니다. 유리 지방산이란 지방 조직에서 혈액으로 흘러나온 지방산으로, 세포막의 인슐린 수용체를 방해하여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결국 포도당이 혈액 속에 쌓이면서 혈당이 올라가는 것이 당뇨병의 본질입니다.
과일의 과당(Fructose)도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과당이란 과일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단순당의 일종으로, 우리 몸 대부분의 장기에서 에너지로 바로 쓰이지 못하고 간에서 젖산을 거쳐 지방으로 축적되는 경로를 밟습니다. 흔히 과일은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내장 지방을 늘리는 방식이 액상 과당과 생화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과도한 섭취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먹는 양보다 무엇을 먹는지가 내장 지방 축적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한국인이 당뇨에 더 취약한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동양인은 서구권에 비해 인슐린 분비 능력 자체가 낮은 편인데, 탄수화물과 지방 위주의 식단은 인슐린 수요를 늘리는 구조입니다. 비만하지 않아도 내장 지방이 많은 이른바 '마른 비만'인 경우에도 당뇨 위험은 충분히 높습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증상 없는 병이 가장 무서운 이유
감기도 1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했던 저는 병원이라는 공간과 거의 인연이 없었습니다. 치과 정기 검진 외에 어디 아파서 병원 문을 두드린 기억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늦게 알았습니다. 당뇨는 중기까지 뚜렷한 증상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함정입니다.
피로감이나 소변 거품을 당뇨 증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만으로 당뇨를 자가 진단하는 것은 부정확합니다. 당뇨의 정확한 진단은 당화혈색소(HbA1c) 검사를 통해야 합니다. 당화혈색소란 최근 2~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치를 반영하는 혈액 내 단백질 지표로, 일시적인 혈당 변화에 흔들리지 않아 당뇨 진단의 기준이 됩니다. 공복 혈당 검사보다 훨씬 신뢰도가 높습니다.
지금 저는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갑니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고, 아침에는 인슐린 주사를 맞습니다. 신장 기능이 70%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뇨 합병증은 작은 혈관부터 망가뜨립니다.
주요 합병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당뇨 망막증: 눈의 미세혈관이 손상되어 시력이 저하되고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집니다.
- 당뇨병성 신증: 신장의 여과 기능이 점차 손상되어 투석이 필요한 상황까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 당뇨병성 신경병증(Diabetic Neuropathy): 신경 기능이 손상되어 손발 저림, 감각 마비가 나타납니다. 감각을 잃으면 발에 상처가 생겨도 모르고 방치하다가 당뇨병성 족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합병증은 모두 혈당이 오랫동안 높게 유지될 때 작은 혈관들이 손상되면서 발생합니다. 혈당 조절에 실패한 결과가 수년 뒤 이런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당뇨는 지금 아무렇지 않더라도 내일을 갉아먹는 병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당뇨병 진료 인원은 37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인지하지 못한 잠재 환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수치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지금 당장 식탁을 바꿔야 하는 이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당뇨라는 진단을 받으면 흔히 "밥을 줄여야지", "단 거 끊어야지"부터 시작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식단 개선의 핵심은 탄수화물과 지방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단백질을 충분히 늘리는 것입니다.
단백질은 과잉 섭취해도 지방으로 잘 전환되지 않고 체외로 배출되는 비율이 높아 살이 잘 찌지 않습니다. 근육량 유지에도 필수적인데, 근육은 포도당을 소비하는 주요 기관이기도 해서 근육이 줄면 혈당 관리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탄수화물 의존도가 높아지고 씹기 편한 부드러운 음식만 찾게 되면서 단백질 섭취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경향이 있어 더욱 의식적으로 챙겨야 합니다.
혈당 스파이크라는 표현도 한번 짚고 싶습니다. 건강 관련 콘텐츠에서 자주 나오는 이 단어는 실제 의학 용어가 아닙니다. 정상인이 포도당이 많은 음식을 먹은 뒤 혈당이 일시적으로 올라갔다가 인슐린 분비로 다시 내려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입니다. 특정 음식을 마치 독처럼 악마화하는 방식의 식단 관리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탄수화물과 단순당 섭취를 줄이는 방향은 맞지만, 극단적 제한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 구성이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접근입니다.
당뇨 전단계라면 지금 바로 식단 조절, 체중 감량, 규칙적인 운동으로 당뇨 진입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 당뇨 진단을 받은 초기라면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도 당뇨 전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췌장 기능은 망가지는 것보다 회복이 훨씬 어렵습니다. 저처럼 신장 기능이 70%까지 떨어진 다음에야 깨닫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당뇨는 기대 수명이 늘어나는 시대에 남은 삶의 질을 가장 크게 해치는 만성 질환 중 하나입니다. 지금 증상이 없다고 괜찮은 게 아닙니다. 건강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 저는 혈당 500을 찍고서야 배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당화혈색소 검사를 받은 게 언제인지 한 번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당뇨와 관련한 진단 및 치료는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