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에 전립선암 4기 진단을 받고 나서야 저는 4년간 유지했던 식단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탄수화물을 극도로 줄이고 고기와 채소 위주로 먹던 식단이었는데, 그때 비로소 콩에 대한 논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렉틴, 피틴산, 장누수증후군… 콩을 먹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하는 주장들이 정말 근거가 있는 건지, 아니면 과장인지 제 나름대로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피틴산과 철분 흡수, 실제로 얼마나 걱정해야 할까
콩이 몸에 해롭다는 주장의 첫 번째 근거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피틴산(Phytic acid)입니다. 피틴산이란 식물의 씨앗 속에 인(phosphorus)을 저장하는 형태로 존재하는 물질로, 음전하를 띠기 때문에 칼슘·철분·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양이온과 결합해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강낭콩, 검은콩, 대두에는 피틴산이 1,300~1,500mg 수준으로 들어 있어 현미(약 900mg) 보다 많습니다. 숫자만 보면 걱정이 될 법도 하죠. 그런데 제가 직접 이 부분을 찾아보니,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피틴산을 꾸준히 섭취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장내 미생물과 소화 효소 적응으로 철분 흡수 저해 효과 자체가 점차 줄어든다는 기전이 논문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 비타민 C를 50mg만 함께 섭취해도 피틴산의 철분 흡수 억제를 넘어 흡수율이 오히려 3~4배까지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비타민 C 50mg은 귤 한 개나 토마토 한 개 정도면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양이라 별도로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칼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피틴산이 장에서 칼슘 흡수를 일부 방해하는 건 사실이지만, 피틴산(IP6)이 뼈의 파골세포(osteoclast) 활동을 억제해 골 흡수 자체를 막는 별도의 효과가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파골세포란 뼈를 분해하고 흡수하는 세포로, 이 세포가 과활성화되면 골밀도가 낮아집니다. 2013년 스페인 마요르카 연구에서 소변 내 피틴산 농도가 높은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골밀도가 높고 10년 고관절 골절 위험이 절반으로 낮았다는 결과는 이 맥락에서 꽤 설득력 있어 보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 농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두부와 템페를 많이 먹는 집단에서 빈혈 발생률이 47%나 낮았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피틴산이 이렇게나 나쁘다면 나와서는 안 될 숫자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피틴산을 해로운 것으로만 봤는데, 실제로는 항산화 효과, 혈당 안정화, 심혈관 보호, 요로결석 예방까지 다양한 이로운 작용이 임상 연구 수준에서 보고되고 있고, 영양제로도 개발·판매되고 있는 물질이더라고요.
피틴산이 걱정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꾸준히 섭취하면 장의 적응 반응으로 철분 흡수 저해 효과가 점차 줄어든다
- 비타민 C 50mg(귤 1개 수준)을 함께 먹으면 철분 흡수율이 3~4배 상승해 억제 효과를 역전시킨다
- 피틴산 자체가 골 흡수 억제, 항산화, 요로결석 예방 등 독립적인 건강 효과를 가진다
- 실제 역학 연구에서 콩을 많이 먹는 집단의 빈혈 발생률이 오히려 낮게 나왔다
렉틴과 장누수증후군, 공포를 부풀리는 논리의 구멍

렉틴(Lectin)이란 식물이 병균, 곤충,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당단백질(glycoprotein)의 총칭입니다. 완두콩 렉틴, 강낭콩 렉틴, 밀배아 응집소(Wheat Germ Agglutinin, WGA), 토마토 렉틴 등이 모두 '렉틴'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사실 이것들은 서로 구조도 작용도 전혀 다른 물질들입니다.
콩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2006년 일본의 TV 방송 사건입니다. 흰 강낭콩을 3분만 볶아 가루로 만들어 먹자고 소개한 후, 시청자 수백~수천 명이 식중독으로 실려 간 사건이죠. 렉틴이 무섭다는 증거로 언급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사건의 결론은 단 하나입니다. 강낭콩은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한다는 것. 강낭콩 렉틴은 물을 넣고 10분 이상 가열하면 95% 이상 제거되고, 20분 끓이면 사실상 완전히히 비활성화됩니다. 대두의 경우 10분 삶는 것으로 99% 이상 비활성화된다는 점도 같이 봐야 합니다.
2021년 코펜하겐대학교 연구팀이 9종 식물, 50여 종 렉틴 샘플을 대상으로 독성과 응집 여부를 총체적으로 평가한 결과, 인체 독성이 확인된 렉틴은 강낭콩 렉틴 단 하나였으며, 이것도 가열하면 무해해집니다(출처: 코펜하겐대학교). 덴마크 식품청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강낭콩 렉틴(생식 상태) 한 가지만 유해하다고 공식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렉틴 논쟁의 진짜 핵심인 장누수증후군(Leaky Gut Syndrome)은 어떨까요. 장누수증후군이란 장벽의 밀착 결합(tight junction)이 열리면서 원래 흡수되어서는 안 될 독소, 세균, 미소화 단백질 등이 혈류로 넘어가 자가면역질환, 우울증, 자폐, 파킨슨병까지 유발한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밀착 결합이란 장 상피세포들이 서로 촘촘하게 붙어 외부 물질의 침투를 막는 구조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불편했던 지점이 있습니다. 장누수증후군을 뒷받침하는 검사와 논리가 순환 논증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렉틴이 위험한 이유는 장누수를 일으키기 때문'이고, '장누수의 증거는 렉틴 같은 독소가 혈중에서 검출되기 때문'이라는 구조입니다. 내 말이 맞는 이유가 내 말이 맞기 때문이라는 논리 구조죠.
현대 의학이 장 투과성(intestinal permeability) 증가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론병(Crohn's disease), 셀리악병(Celiac disease), 과민성 대장증후군(IBS)에서는 장 투과성 증가가 실제로 관찰됩니다. 다만 2000년 미국 CDC가 페루 영아를 대상으로 시행한 락툴로스-만니톨(Lactulose-Mannitol, LM) 검사 연구에 따르면, 바이러스성 설사로 급격히 높아진 장 투과성이 불과 20일 만에 정상으로 완전 회복되었습니다(출처: CDC). 락툴로스-만니톨 검사란 장 투과성을 측정하는 검사법으로, 두 당 분자의 소변 내 배설 비율로 장벽 상태를 평가합니다. 이 결과는 장 투과성 증가가 만성 질환이 아니라 가역적(reversible)인 일시 현상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셀리악병을 일으키는 물질은 글루텐 속 글리아딘(gliadin)이라는 단백질인데, 이것은 밀배아가 아닌 밀의 배유(endosperm)에 있습니다. 반면 장누수 논쟁에서 주로 지목되는 밀배아 응집소(WGA)는 배아에 있는 당단백질로, 이 둘은 아예 별개의 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두 물질을 계속 혼용해서 설명하는 콘텐츠가 많다 보니, 저도 처음엔 같은 개념인 줄 알았습니다. 구분해서 보니 주장의 구멍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친정아버지가 96세까지 청국장, 콩밥, 두부찌개를 날마다 드시고 병원 한 번 안 가셨다는 이야기가 사실 저한테는 이 모든 이론적 논쟁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렉틴과 피틴산이 그토록 위험하다면 평생 콩으로 사신 그분의 수명과 건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전립선암 4기 진단을 받고 식단을 다시 짜면서 저는 결국 극단을 버리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과도한 포화지방을 줄이고, 탄수화물도 적당히 넣고, 채소의 종류를 더 다양하게 늘렸습니다. 콩도 물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음식 하나를 악마화하는 논리보다, 수십 년간 실제로 장수한 사람들의 밥상이 더 신뢰할 만한 데이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20년 생존 목표를 향해 가는 입장에서, 콩을 멀리할 이유는 지금 제게 없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영양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문제는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