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믹스커피 한 봉지를 뜯으면서 "이거 몸에 안 좋은데 어쩌지" 하는 생각, 한 번쯤 해보신 분 많으실 겁니다. 저도 30년째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오랜 시간 동안 믹스커피를 손에서 놓지 못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있었습니다. 커피가 발암물질이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고요. 그런데 최근에 17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접하고, 그 오랜 죄책감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커피는 정말 발암물질인가, 항산화 효과부터 짚어보면

2018년 캘리포니아 법원이 커피 판매 시 발암물질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판결을 내렸을 때,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이 한 번씩 놀랐습니다. 판결의 근거는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물질이었습니다. 아크릴아마이드란 음식을 굽거나 볶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화합물로, 커피콩을 로스팅할 때도 발생합니다. 이 물질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판결은 1년 만인 2019년에 뒤집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그간 축적된 커피 관련 연구 약 천여 건을 종합 검토한 결과, 커피를 발암물질로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IARC는 이미 2016년에 커피를 발암물질 목록에서 해제하고 3군으로 재분류했습니다. 3군이란 발암물질로 분류하기 어려운 물질을 의미합니다. 즉, 현재 커피는 발암물질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 방향의 연구들이 훨씬 많습니다. 커피에는 폴리페놀이라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폴리페놀이란 식물이 자외선이나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화합물로, 인체에서는 활성산소를 중화하는 항산화 작용을 합니다. 활성산소가 DNA나 단백질에 손상을 일으키면 암세포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폴리페놀이 이 과정을 억제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성분이 클로로겐산입니다. 클로로겐산이란 커피에 특히 풍부하게 들어 있는 페놀계 화합물로, 만성 염증 억제, 혈당 및 콜레스테롤 저하, 혈관 신생 억제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클로로겐산이 대장암세포의 증식과 전이를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1천 명의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커피를 마시는 환자의 사망률이 낮았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커피가 예방 효과를 보이는 암종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 유방암, 전립선암, 구강암, 인두암
- 흑색종, 피부암, 위암, 대장암
- 간암, 신장암, 자궁내막암
물론 방광암이나 췌장암, 폐암은 연구마다 결과가 엇갈려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그래도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근거가 너무 부족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약이 대부분 쓴맛을 내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쓴맛을 내는 성분들 중에 체내에서 유익하게 작용하는 것들이 많고, 커피의 쓴맛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이 꽤 오래전부터 들었거든요. 물론 이건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닙니다만, 30년을 마셔오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어느 정도 믿게 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믹스커피, 적정량이라면 정말 괜찮은 걸까
믹스커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항상 충돌합니다. 프림과 설탕이 들어가 있으니 건강에 나쁘다는 쪽과, 양이 워낙 적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쪽입니다. 제 경험상 이 두 시각은 모두 일부씩 맞고, 맥락을 떼어놓으면 둘 다 틀립니다.
일단 수치로 보면 이렇습니다. 믹스커피 한 봉지에 들어 있는 포화지방은 약 1.5g인데, 이건 요플레 한 개와 동일합니다. 우유 한 잔의 포화지방이 5g이니, 포화지방 측면에서만 보면 믹스커피 세 잔이 우유 한 잔과 비슷합니다. 당류도 마찬가지입니다. 믹스커피 한 봉지에는 당류가 약 5g 들어 있는데, 사과 한 개에는 당류가 26g이나 됩니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과일과 비교해도 양이 훨씬 적습니다.
그렇다면 믹스커피는 무조건 괜찮다는 이야기일까요. 저는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프림의 주성분인 라우르산은 LDL 콜레스테롤, 즉 혈관에 쌓여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올리는 작용을 합니다. 양이 적다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뇨나 고지혈증이 있는 분들은 하루 한 잔으로 제한하는 게 낫습니다.
저는 13년 전쯤 하루에 커피를 여덟 잔까지 마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상 밥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셨던 시기인데, 그때도 건강상 큰 이상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게 커피가 안전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다만 커피를 30년 넘게 마셔온 저로서는, 커피 자체가 몸을 망가뜨리는 물질이라는 주장이 선뜻 와닿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할 부분이 있습니다. 뜨거운 커피입니다. 란셋(Lancet)이라는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65도 이상의 뜨거운 음료를 꾸준히 마실 경우 식도암 발병 위험이 최대 여덟 배까지 높아진다고 합니다(출처: WHO 국제암연구소). IARC는 뜨거운 음료를 2군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뜨거운 물로 바로 타서 마시는 습관이 있는 분들이라면, 온도를 조금 낮춰서 드시는 것이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미세플라스틱이 용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매일 반복하는 음용 습관이라면 장기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텀블러나 머그컵에 조금 식힌 물로 타서 마시는 것이, 커피의 효능은 그대로 누리면서 불필요한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7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하루 서너 잔의 커피를 꾸준히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설탕을 넣는 경우도, 넣지 않는 경우도 결과는 동일했습니다(출처: WHO).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안정된 환경에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 자체가 수명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커피의 성분만으로 수명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연구에서 통제하지 못한 변수들이 적지 않다는 시각도 충분히 타당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올해 95세이신데, 지금껏 믹스커피를 하루 두 잔씩 드시고 계십니다. 특별한 질환 없이 건강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적정량이라면 믹스커피도 크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물론 95세까지 건강하신 데는 소식과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더 큰 역할을 했을 테지만요.
커피에 대해 너무 세세하게 따지면서 마실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 자체가 오히려 몸에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루 한두 잔의 믹스커피라면, 온도만 주의해서 드시는 게 현실적인 결론이라고 봅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만 제거하고 폴리페놀 같은 항산화 성분은 그대로 유지되므로, 카페인에 예민해서 수면이 방해받는 분들이라면 디카페인을 선택하는 편이 오히려 낫습니다. 야간 수면 방해 자체가 IARC 기준 2군 발암물질에 해당하거든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정량과 음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특정 질환이 있는 분들은 담당 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